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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영화보기

더 테이블 (The table)

by 자립청년 2019.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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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테이블 The table'은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보고 여운이 깊어서 다음에 꼭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였다. 당시 상영관이 많지 않아서 굉장히 아쉬웠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 넷플릭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니 참 반가웠다. 넷플릭스는 흔히 말하는 상업영화뿐만이 아니라 독립영화 예술영화 인디영화를 다뤄주는 점이 정말 좋다. 넷플릭스 덕에 다시 보는 이야기, 영화 더 테이블 포스팅이다.

예쁘지만 살짝 아쉬운 더 테이블의 메인 포스터. 4명의 여배우를 담고 있지만 영화 더 테이블은 만남, 관계를 잘 표현한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이기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표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총 8명의 사람이 등장 하기에 과하다면 그들의 테이블을 담았어도 참 흥미로웠을 것 같다. 

 

더 테이블 The table 은 한 공간, 카페, 같은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네 번의 만남, 8명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명대사라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주목할만한 대사들이 참  많기도 했다.

 

1.  정유미 그리고 정준원. 오전 열한 시, 에스프레소와 맥주.

 

유명한 여배우가 된 정유미 그리고 그녀의 전 남자 친구 정준원의 재회. 연인의 관계에 있던 상대를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어떨까. 약간의 두근거림, 설렘, 걱정, 긴장 속에 추억을 회상하며 그 시절이 그리운 마음이 들 것 같다. 이 단편의 여주인공 정유미 또한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공개된 카페에서 전 남자 친구를 만난다. 잘 지냈어?라는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되었지만 점점 정유미는 불편해진다.

전 남자 친구 정준원은 너는 그대로다. 역시 연예인은 늙지 않는 것 같다 무슨 시술이나 성형을 해? 라는 물음부터 시작해 자신의 친한 친구들 에게 뭐 일종의 비밀 얘기처럼 네가 내 전 여자 친구이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다는 황당한 고백을 한다. 전 여자 친구, 친구 나아가 평범한 한 사람이 아닌 탑스타 여배우 정유미로만 대하고 그의 목적만 달성할 뿐이다.

 

- 증권가 찌라시? 맞는 게 있다고 그걸 다 믿을 필요는 없잖아.

   뭐, 맞는 게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 거기 보여지는 건 이미지일 뿐이야.

 

- 아쉽다.

   나도 그래.

 

자신의 자랑거리를 위해, 추억이라는 이름하에 증거 사진까지 찍어달라고 하며 그 사진을 그 자리에게 친구들에게 바로 전송하는 남자, 그들을 보고 있는 동료들. 영화 더 테이블의 네 개의 단편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가장 매력이 없는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들에 나오는 대답은 확장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리고 마지막 아쉽다의 다른 의미도. 

 

들리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보이는 거 외 그들의 진짜 삶.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만 봐도 좋은 풍경, 예쁜 사진, 웃으며 찍은 셀카, 해외여행 사진 등이 넘쳐나고 다들 잘 살고 있구나, 과연 내 현실만 이렇구나 하고 비교하고 때로는 초라해지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이미지는 거짓이 아닐지어도 정유미의 대사처럼 거기 보이는 건 이미지일 뿐이다. 

 

: 에스프레소 같은 짧은 씁쓸함을 남긴 테이블.

 

2. 정은채 그리고 전성우. 오후 두 시 반. 두 잔의 커피와 초콜릿 무스케이크.

 

고작 세 번 만나고 네 달인지 다섯 달인지 정확히 기억 못 할 여행을 갔다 돌아온 남자. 그리고 그 자리에 남아있던 여자. 이 단편은 네 개의 이야기 중에 가장 밝고 달콤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했던 시간들 쌓인 응어리 같은 감정 등 그리고 사랑, 만남의 시작. 뻔한 감정선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미소 짓게 하는 (실제로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작은 독립영화관이었는데 이 두 번째 단편에서 웃음소리가 꽤 들려왔었다.) 웃음 포인트도 제법 있었고 정은채의 약간 삐져있는 여자, 애매하지만 서운함이 쌓여있는 연기도 귀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 단편을 통해 전성우라는 배우는 처음 알았는데 (첫 이영화를 봤을 때도 그랬지만 다시 봐도 여전히) 이 배우는 굉장히 매력 있는 모습으로 인물을 표현한 것 같다. 마스크, 눈빛 또한 선하고 악하고 캐릭터에 따라 변할 것 같다는 느낌을 줘서 앞으로가 궁금해지는 배우 중에 한 명이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직도 새해라고 해도 되나?

   올해 들어 처음 봤잖아요.

 

- 두고 가신 거요.

  고마워요. 안 그래도 허전하던데.

 

- 제가 일기를 쓰는 게 아닌데 민우 씨가 왜 나와요?

   일기엔 제가 나와요?

   전 일기 안 써요.

 

- 제가 파스타를 좀 잘 만들거든요. 우리 집에 갈래요? 드셔 보시고 묘사를 좀 해보세요. 경진씨가 기자를 해도 되는지, 제가 음식점을 해도 되는지. 서로 알아봅시다.

 

대화들 너무 사랑스럽다. 두고 가신 거요 대사는 시계를 전해주며 하는 이야기지만 두고 가신 거요. 안 그래도 허전하던데.. 시계를 아닌 시계만큼 시간만큼 중요한 여자 주인공을 염두에 둔 문장. 지극히 나의 취향이지만 나는 뭔가 이렇게 한 가지 정확한 의미가 있는 문장이 아니라 중의적 표현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마 이와 같은 이유로 기승전결이 뚜렷한 (일반적으로) 흔히 이야기하는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영화를 즐겨보는 것 아닐까 싶다.)

 

: 두근두근 초콜릿 케이크처럼 달콤한 테이블.

 

 

 

 

3. 한예리 그리고 김혜옥. 오후 다섯 시. 두 잔의 따뜻한 라떼. 

 

세 번째 단편, 이 이야기만 여자와 여자가 나온다. 나머지 단편들은 남과 여로 구성되었기에 이 단편을 볼 때는 왠지 감독이 여성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더 테이블은 남성 감독, 김종관 감독이다. 결혼 사기를 치는 직업적 사기꾼들이다. 한예리는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결혼을 위해 사람을 사고 여러 정보를 주며 결혼식날 엄마가 되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연기자 김혜옥을 만난다. 

 

- 선생님 이름은 김희남. 돌아가신 저희 엄마 이름이에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에 진짜 어머니 이름을 쓰면 되나? 아가씨가 겁이 없네.

   그래요?

 

- 아 따님이 계셨구나. 저랑 결혼식 날짜가 같아요?

   아니, 몇 년 전에. 근데 죽었어요. 그것도 몇 년 전에.

 

- 돈 나올 때가 있어?

  없어요. 좋아서 하는 거예요.

 

- 처음이 좀 꼬였어요. 이렇게 살다 보면 솔직할 기회가 없잖아요.

 

진짜 결혼을 위해서. 바로 이전의 단편이 너무나 달콤했기에 더욱 대조적으로 슬프기도 했다. 두 배우의 절제된 연기들이 무겁게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이 편을 보면서 정말 대사가 섬세한 영화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위에 적어둔 명대사들을 보면 특히나 이런 일에 진짜 어머니 이름을 쓰면 되냐 겁이 없다는 말에 그래요? 하고 되묻는 질문의 여운, 결혼식 날짜와 죽은 딸에 몇 년 전에가 두 번이나 반복되며 전해지는 딸에 대한 그리움.. 마음에 드는 섬세한 문장들이다.

엄마의 부제, 딸의 부제. 엄마의 나이, 딸의 나이, 엄마의 역할, 딸의 역할. 친딸의 결혼식날 입으려고 마련해둔 좋은 옷을 입는 것으로 엄마와 딸의 마음을 모두 어루만진다. 전하는 마음. 결핍의 쓸쓸함.

 

: 두 잔의 따뜻한 라떼여서 다행이었던 테이블.

 

4. 임수정 그리고 연우진. 비 오는 저녁 아홉 시. 식어버린 커피와 남겨진 홍차.

 

결혼이라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혜경과 운철의 만남이다. 결혼, 다른 남자를 선택한 여자 그 여자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남자. 

 

- 예쁜 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다 찢어놨어?

  그냥 꽃인데 뭐. 어차피 죽은 꽃이야.

 

- 말만 해. 돌아갈게.

   나 혜경 씨 못 먹여 살려.

   그러다가 너도 누구랑 결혼하겠지.

 

- 마음이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다르긴 하지만.

 

아, 어차피 죽은 꽃이라는 대사부터 역시나 모든 문장이 깊이 있다. 한 권이 책 같다. 표현하기 어렵지만 분명 결혼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많은 것이 있다. 뭔가 TMI이긴 하지만 개봉 당시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을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과 나는 결혼을 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처음 이영화를 봤을 때 나는 연애 중이었고 두 번째로 다시 이 영화를 본 지금의 나는 결혼을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이 과정과 감정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이다.

결혼한 지 일 년이 되었고 우리는 6년을 연애했다. 이렇게 긴 연애를 하고서도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서 촛불 같은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 이 사람을 넘어서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하여도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웠다를 대신할 단어를 찾고 있는데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할 만큼 그것은 정말 또 다른 문제였다. 결혼식이라는 단순한 절차적 의미가 아니라 한 사람과 가족이 되는 과정을 경험해본 사람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 단편을 바라보는 깊이가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이 단편을 바라보는 폭이 조금 더 넓어진 것처럼. 선택과 타이밍 그리고 선택과 마음. 모든 순간이다.

 

:식어버리고 남겨진 감정 녹아있는 테이블.

다시 한번 더 봐야지 했었던 영화를 약 2년이 지나 또 다른 나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더욱 흥미 있었다. 그때도 좋았는데 다시 보니 또 좋다. 아마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보면 또 다른 생각들도 들겠지만 그때도 또 좋을 것이 분명한 영화다. 여운이 길다. 만남 관계 그리고 다른 종류의 사랑까지 존재한다. 한정적 공간에서 큰 움직임이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70분의 짧은 러닝타임이 더욱 짧게 느껴질 만큼 몰입도가 뛰어났다. 영상의 빛, 색감 또한 너무 아름다웠고 8명의 삶을 연기한 8명의 배우도 모두 매력적이었다.

만나서 안녕했던 너무나도 섬세한 모두의 이야기였다. 정말이지 앞으로 이런 한국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 

 

" 천천히 우러나는 진한 홍차 같은 영화."

 

덧, 이 영화를 생각할 때면 짐 자무쉬의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 둘은 다른 이야기지만 테이블, 커피의 공통점과 고정된 상황과 반복, 옴리버스 형식, 그리고 울림 있는 대사들 부분때문에 연상되는 것 같다. 영화 더 테이블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피와 담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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